논평/성명

여성의당 논평/성명
남자가 여자를 ‘괜히’ 죽이는 나라에서, 대통령의 책무를 묻는다
여성의당
2025-09-20 22:17:16 조회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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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9일 청년 주간을 맞아 주재한 토크콘서트에서 “여자가 남자를 괜히 미워하면 안 된다”, “상상하기 어려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현재 벌어지고 있다”고 발언했다. 매일 같이 벌어지는 잔혹한 여성 살해와 OECD 1위 수준의 성별임금격차, 불법촬영과 성폭력, 교제폭력 등 날로 심각해지는 여성폭력에 절규하는 여성들의 외침을 ‘남성을 향한 미움’으로 일축한 것이다.

대한민국 청년 여성과 남성 사이에서 벌어지는 ‘상상하기 어려운 안타까운 일’로 가장 먼저 호명된 것이 ‘여성이 남성을 괜히 미워하는 현상’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 대통령이 무엇보다도 안타까워해야 할 것은 그동안 남성의 손에 목숨을 잃은, 국가가 살려야 했고 살릴 수 있었던 여성폭력 피해자들이 아닌가. 공권력에 수없이 구조를 요청했음에도 제도의 공백과 정치의 무관심 속에서 맞고 죽어야 했던 여성들이 아닌가. 이재명 대통령이 청년 여성에게 '괜히' 미움받아 억울하고 속상한 청년 남성의 기분을 헤아리는 동안, 지금 이 순간에도 여성들은 오직 여성이란 이유로 남성에게 목숨을 잃고 있다. 국민의 절반이 죽어가는데, 여자가 같은 여자도 아니고 애꿎은 남성을 미워해 안타깝다는 대통령의 태도는 무지와 태평을 넘어 잔혹하고 무자비하다.

이재명 대통령에게 묻는다. 때리지 말라, 죽이지 말라, 불법촬영 하지 말라고 외치는 청년 여성들의 절박한 호소를 '괜히' 남성을 미워하는 안타까운 일이라고 모욕하기 전에, 단 한 번이라도 청년 여성들이 처한 여성폭력, 여성차별의 현실을 고찰해 본 적이 있는가? 청년 여성이 '괜히' 남성을 미워하고 있다면, 여성을 폭행하고, 강간하고, 죽이는 남성들은 도대체 무엇이라 설명되어야 하는가? 

매일 다른 여성이 죽고 모욕당하는 것을 보며 살아남은 여성들이 남성에게 느끼는 감정은 ‘미움’이 아니다. 그것은 다음은 내 차례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 피해자를 향한 고통스러운 연민과 죄책감, 더 이상 한 명도 잃을 수 없다는 절박한 분노, 잔인한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피로감, 그럼에도 환멸을 이겨내고 세상을 바꿔내야만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이다.

같은 날, 이 대통령은 ‘취업 전에는 여자가 유리하고, 취업 후에는 남자가 유리하다’, ‘기회 총량의 문제’라며, 남녀 모두 ‘똑같이’ 힘들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현존하는 여성 차별의 심각성을 지우기에 바빴다. 여성들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겪는 차별은 사회적·제도적 현실로 입증되어 왔음에도, 이재명 대통령은 끝까지 이를 여성들의 “차별 느낌”으로 격하시켰다. 나아가 여성가족부를 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해, ‘평등’이라는 미명하에 남성 차별을 정부 차원에서 연구·지원할 것을 압박하며 허구의 차별을 창조해 제도화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여성들은 남성과 고통을 겨루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말 그대로 살려달라고, 보호해달라고 절규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사회적 영역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맞닥뜨리는 수많은 장벽, 생애 전반에 걸쳐 끊임없이 노출되는 남성의 위협으로부터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국민 전체를 대변해야 할 대통령의 입에서 남초 커뮤니티에서 공유되는 편향적 인식을 반영한 발언이 반복적으로 쏟아지는 현실에 참담함을 감출 수 없다. 심지어는 ‘여혐 정치인’의 일등 주자로 나섰던 이준석마저 “여자가 여자를 미워하는 것은 이해한다”는 대통령의 망언에 담긴 ‘여적여 프레임’을 지적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본인과 같은 남초 커뮤니티를 이용하던 이준석과 누가 더 여성혐오자인지 겨루고 있는 작금의 상황이 진정 부끄럽지 않은가. 지난 수년간 남성 정치인들이 실력으로 경쟁하지 않고 앞다투어 여성혐오를 기반으로 정치적 입지를 다지려 했던 행태는 씻을 수 없는 국가적 수치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제라도 여성혐오로 똘똘 뭉친 남성들의 환심을 사려고 애쓰는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국민의 절반이 위험에 처한 지금, 국가 역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러한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남성을 미워하는’ 여성들을 회초리질할 것이 아니라, 여성폭력과 차별의 현실을 왜곡 없이 인식하고 이미 인셀화된 남성들을 앞장서서 건전한 길로 이끄는 것이야말로 강인하고 지혜로운 지도자의 리더십이다. 대통령이 해결할 문제는 ‘이유 없이 남자를 미워하는 여자들’이 아니라 ‘이유 없이 여자를 차별하고 때리고 죽이는 남자들’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지금부터라도 여성혐오와 성차별로 점철된 한국을 바로잡기 위해 대통령의 권한과 책임을 제대로 발휘하라.

남자가 여자를 ‘괜히’ 죽이는 이 나라에서, 대통령의 임무는 여성들이 매일 마주하는 죽음과 차별, 공포와 불안을 직시하고, 그것을 끝내기 위한 국가의 역할과 책임을 고민하고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다. 특정 성별의 환심을 사기 위해 현존하는 차별을 부정하는 대통령의 행보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여성의 목숨보다 남성의 기분을 앞세우는 순간, 대통령은 여성들의 죽음을 방치하고 조장하는 공범으로 남을 뿐이다.

2025. 9. 20.
여성의당 비상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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